과학록

R&D 과제의 선정 및 평가 제도 개선을 위한 젊은 과학자들의 생각

황로 2020. 5. 29. 00:20

국회에서 토론회는 일상이었다. 국회 소회의실. 

국회에서 일할 때,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을 담당했었습니다. 의원실에서 몇 명 안 되는 이공계 출신이라 제가 맡았는데, 조금 난감했습니다. 국회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이런 연구소가 한국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곳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의 국감 지적 사항과 관련 이슈들을 살펴보며 대관업무 하시는 분들을 만나던 중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이 가장 힘드냐’는 저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율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왜 연구자들은 자율성을 이야기 했을까요?

 

아마 4학년 수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 졸업 이후 진로에 대한 질문에 세포학 교수님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연구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364일을 아무렇지 않게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실험의 성과가 보이고, 기대했던 결과가 도출되는 것은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예측할 수 없는 어느 날에 나타날 수도 있기에, 교수님은 그 지난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연구자가 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토론회 자료집 표지 

마침 어제 오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 제154회 한림원탁토론회가 열렸는데, 그 주제가 바로 ‘젊은 과학자가 바라보는 R&D 과제의 선정 및 평가 제도 개선 방향’이었습니다. 연구과제를 어떻게 평가 할 것인지 평소에도 관심이 있었기에, 관련 자료집 등을 자세히 읽어보았습니다.

 

2019년 우리나라 R&D 예산은 20조원이 넘었고, 올해에도 약 4조원이 증액되었습니다. 국가의 미래는 과학기술에 달려 있기 때문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항상 과제 선정과 평가가 있기 마련입니다. 연구비를 지원받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연구비를 받은 것이 오히려 연구에 해가 된다면 그것은 큰 문제이기 때문에 적절한 평가 기준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해 저는 전에도 현장의 애로사항을 들었는데 이번에도 그 연장선에 있는 이야기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주제발표에서는 삼성의 미래기술 육성사업을 사례로 들며 한림원의 과학난제 사업 추진체계와 대조해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언론에 보도가 된 부분인 심사위원 관련해서, 오히려 여러 리스크를 줄이고자 도입한 상피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들이 설문조사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평가의 공정성을 높이고자 도입했는데, 아무래도 학계가 해외에 비해 좁은 한국의 특성상 운영의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연구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면, 연구자 입장에서는 부당함을 크게 느낄 것입니다.

 

토론회 자료집 22쪽. 

또한 과제기획의 편중된 주제를 문제라고 선택한 분들도 꽤 있었습니다. 분명 트렌드라는 것은 존재하지만, 모두가 유행만 좇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이를 어떻게 보완할지 대안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서두에 제가 이야기 했던 자율성에 관해 이 토론회에서도 언급이 되었습니다. 정부의 입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정부는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것이, 가끔씩 터지는 연구비 횡령 등의 사건이 발생할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상황을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연구자들의 주장은 그런 사례는 일부에 불과하며, 연구자들의 양심과 명예를 충분히 신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 측의 말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접점을 찾는 것이 관건입니다. 문제가 적발되면 학계에서 퇴출될 것을 각오해야 하는 수준이 된다면, 연구자는 섣불리 부정행위를 저지르지 못할 것입니다. 연구는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그리고 그 결과마저도 더 좋은 결과를 향한 디딤돌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틀에 박힌 평가나 이해도가 떨어지는 평가는 과학의 진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번 코로나19를 치료하는 과정에 한국의 의료계 및 과학계에 대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건전한 토론과 논의를 통해 한국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합니다.